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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거울, 돌 거울, 쇠 거울>
법당에 누가 오셔서 말씀하시길,
“‘법당에 부처는 나무로 만들고 돌로 만들었는데, 나무나 돌에게 절하고 시주하고 한다. 시장바닥이 다 부천데 어디 가서 절하느냐!’ 이렇게 성철스님이 말씀하시데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장에 가득한 사람들이 다 부처님들로 보입니까? 그 시장바닥에 욕하고 떠드는 사람들이 다 부처님으로 보이면 정말로 애써 절에 올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부처님이면 그대로 세상이 법당인데, 법당을 두고 무슨 법당을 찾아가겠습니까?
반대로 보면, 법당에 부처님 한 분도 공경하고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시장바닥에 그 많은 떠드는 사람들이 부처님으로 보이겠습니까?
우리 눈에는 아직도 주변 사람들이 부처님으로 안보이고 내가 부처님으로 안 보이기 때문에 절에 와서 법당에 모셔놓은 돌, 나무, 쇠뭉치로 조성된 부처님께 절을 드리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부처님 잘 이겨내겠습니다.’ ‘부처님 공경합니다. 저도 당신처럼 살겠습니다.‘ 이렇게 부처님께 감사하고 참회하고 존중하는 연습을 하다보면 우리도 닮아갑니다.
부처님은 형상을 만들어서 법당에 모셨지만, 사실은 거울과 같습니다.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이 자기 자신한테 절을 하는 것이 됩니다. 나한테 절을 하다보면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부처님 같이 생각될 때가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아내가 부처님은 아닌가?‘ ’속 썩이는 남편, 아들이 나 공부시킬려고 오신 부처님은 아니신가?‘ 이런 생각도 한 번씩 해보게 됩니다.
한 번 두번 그렇게 거울을 앞에 대하고 감사와 존중을 연습하다보면, 내가 먼저 부처님을 닮아가고 남도 부처님처럼 보이고… 언젠가는 나나 남이나 ’원래 이미 완전한 진짜 부처님이었다’는 걸 크게 깨닫는 날도 오지 않겠습니까?
내가 나한테 절하는데 손해볼 게 뭐가 있습니까? 법당에 들어오시는 걸 인색하게 여기거나 무서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앞에 걸어가셔서 두 부부가 예쁘게 합장하고 인사드리고 웃으며 가셨습니다.
법당에 돌, 나무, 쇠뭉치에 절할 수 있는 사람은 만물과 만인에게 절할 수 있는 사람이요, 자기 자신에게 늘 절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돌, 나무, 쇠뭉치에 절할 수 없는 사람은 만물과 만인에게 절할 수 없는 사람이요, 가장 서글픈 사실은 자기 자신에게 조차 스스로 업신여기는 사람입니다.
법당에 모셔진 부처는 돌덩이요, 나무조각이며, 쇠뭉치인 것은 사실이나, 그러나 돌덩이와 나무조각과 쇠뭉치가 곧 그대로 진실한 부처님입니다. 내게 나무거울, 돌거울, 쇠거울 이니까요.
- 부처님과 보살님들께서는 중생들에게 ‘어서 오시라. 잘 오셨다’고 예쁘게 장식해 입으시고 화장까지 하셔서 오늘도 내일도 하염없이 그 자리에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