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 중생이 성품을 보아 일체의 중생과 부처를 제도하여지이다.
[심사心似와 형사形似] 綠天館集序 做古爲文,如鏡之照形,可謂似也歟?曰左右相反,惡得而似也; 如水之寫形,可謂似也歟? 曰本末倒見,惡得而似也; 如影之隨形,可謂似也歟? 曰午陽則侏儒僬僥, 斜日則龍伯防風,惡得而似也; 如畫之描形,可謂似也歟? 曰行者不動, 語者無聲, 惡得而似也.. 曰然則終不可得而似歟? 曰夫何求乎似也? 求似者, 非眞也, 天下之所謂相同者, 必稱酷肖, 難辨者, 亦曰逼真,夫語眞語肖之際, 假與異, 在其中矣. 故天下有難解而可學, 絶異而相似者. 鞮象寄譯,可以通意,篆籀隸楷,皆能成文. 何則? 所異者形, 所同者心故耳.繇是觀之, 心似者, 志意也, 形似者, 皮毛也. 李氏子洛瑞, 年十六, 從不妄學, 有年矣. 心靈夙開, 慧識如珠,嘗携其綠天之稿, 質于不侯曰: “嗟乎! 余之爲文, 纔數歲矣, 其犯人之怒多矣. 片言稍新,隻字涉奇, 則輒問古..
부처가 크면 큰 법당에 쓰이고 부처가 작으면 작은 법당에 쓰이며 부처가 크도 않고 작도 않으면 그런 법당에 쓰인다. 그러나 큰 부처가 작은 법당에 모셔질 수 없고 작은 부처는 큰 법당에 적합하지 않다. 큰 것이 반드시 큰 쓰임은 아닌 것이니, 큰 것이 오히려 그 쓰임을 적게 만든다. 크기의 틀이 그 쓰임을 구속하기 때문이다. 그럴진댄 진실로 크다는 것이 무엇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실로 큰 것은 형상이 없는 부처다. 형상이 없는 부처는 어디든, 언제이든, 누구든 모셔서 쓸 수 있다. 더 나아가보자면 쓰임 또한 없는 부처다. 일체 쓰임이 없으니 일체에 쓰이지 않은 바가 없는 까닭이다. 허공이 모든 존재의 쓰임이듯. 크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형상도 없고 쓰임도 없는 본 부처로 돌아와 귀의하는 것이다...
왕이 거지가 되시니 거지가 왕이 되시다.
腫大膿多 泥多佛大 종기가 크면 고름이 많이 나오고 진흙이 많으면 부처가 크다. - 송담선사.
【희곡 ‘출구 없는 방’(1944)의 대사를 통해 “지옥, 그것은 타인들이다.(L‘enfer, c’est les autres.)”라고 처음 말한 사르트르는 이 말이 “늘 오해되어 왔다”고 했다. “타인과의 관계는 언제나 해가 되고 지옥처럼 된다는 뜻이라고 사람들이 오해하는데, 내가 말하고자 한 건 좀 다르다”고 했다. 이 연극에 대한 1965년 강연에서 그가 한 말이다. “우리는 타인들이 우리를 판단하는 잣대로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 (중략)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옥에서 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타인들의 판단과 평가에 지나치게 의존하기 때문이다.”】 - 중앙일보. ——— 타인을 의식하면 지옥이 된다. 타인을 의식하는 나라는 것이 무엇이기에 스스로를 옥죄나? ”남에게 속지 마라.“ 나에게 속지..